아름다움의 근원, 어머니

아름다움의 근원, 어머니

아름다움의 근원,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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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으로 나가자, 여기 있으면 미래가 없다."
—장원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

오늘날의 태평양에서 그 뿌리를 향해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이름이 있다. ‘윤독정 여사’. 활달하고 사람 좋아하는 천품을 지닌 윤 여사는 다름 아닌 장원 서성환의 친모다. 여장부와도 같은 단단하고 올곧은 기세로 삶을 개척하고, 집안의 든든한 기둥으로 식솔을 먹여 살린 그는 장원이 태평양을 키우고 사업을 발전해 내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살림이 아닌 것을 하는 여인네를 곱지 않던 시선으로 보던 그 시절, 큰 밑천이라 부름 직한 것이 없음에도 장사에 뛰어든다는 것은 가히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었다. 주변의 달갑지 않은 눈초리와 무시를 견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윤독정 여사에게는 특유의 붙임성과 여유가 있었다. 개성에 터를 잡고 두 해가 흘러 1932년이 밝았을 때, 장원의 어머니는 원료가 좋은 동백기름을 구해 머릿기름을 만들어 판매했다. 만들기 어렵고 공급량이 제한적이라 금액이 저렴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개성에서 수요가 있었기에 제조와 판매를 결심한 건 날카로운 혜안이었다. 장원의 어머니가 특히 집중한 것은 제품에 대한 품질과 사람에 대한 신용이었다. 훗날 장원이 사람들에게 신용 받은 이유, 꾸준히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태도 또한 어린 시절 보아온 윤독정 여사의 심성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었을 것이다.

“내 일을 거드는 게 아니라 네게 일을 주겠다.”
—장원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

장사는 어느덧 궤도에 올라 하루하루 바삐 흘러가기 시작했다. ‘창성상점’이라는 이름을 달고 온 가족이 협심하여 키워나간 상점은 머릿기름, 미안수, 크림 등 화장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사업으로 점점 더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었다. 상점이 커질수록 일손이 부족해지는 것을 몸소 느낀 장원은 어머니가 시키는 일부터 시키지 않은 일까지 야무지게 일감을 찾아 어머니를 도왔다. 여러 아들딸 중에서도 특히 장사에 무던히 섞여 드는 장원을 보며 여사는 일찌감치 자신과 장원이 닮은 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예감을 믿고, 장원의 어머니는 장원에게 자신이 쌓아온 기술력과 화장품에 대한 지식, 판매에 관한 노하우를 하나씩 건네게 된다. 좋은 원료를 파악할 줄 아는 야무진 판단력은 물론,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을 향한 마음을 성실히 보여주는 능력을 갖춘 장원은 하나씩 제 역할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장원의 성장세는 가팔랐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들을 사들이는 심부름 정도에 불과했지만, 장원은 금세 가르쳐주지 않은 것, 가르침으로 깨달을 수 없는 영역까지 헤쳐 나갔다. 그는 각 거래처의 특징과 장단점을 빠르게 파악했고, 물건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는 데에 속도를 붙여갔다. 성실한 소년의 열망은 거래처 상인들에게도 퍽 인상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기술은 훔쳐도 자세는 훔칠 수 없다.”
—장원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

장원은 오래간 어머니가 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윤독정 여사가 원료를 매만지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살피면서 알음알음 기술을 쌓아온 그였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기술을 다루고 임하는 자세에 있었다. 말로는 가르칠 수 없는 손끝의 감각, 피부로만 느낄 수 있는 원료의 질감 같은 것을 장원은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기술은 훔쳐도 자세는 훔칠 수 없다.” 장원은 어머니의 말을 뼛속 깊이 새기며 어머니를 흉내 내는 아모레퍼시픽 것이 아닌, 자신만의 자세와 태도를 새기기 위해 집중했다. 어린 소년이 밟아온 인내의 경험은 차차 두각을 나타내며 양손에 익숙하게 달라붙었고, 화장품을 손수 매만지며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크고작은 경험이 쌓여 점점 더 굳센 중심을 갖추게 된 장원은 마침내 열여덟이 되었고, 1941년 개성에 김재현백화점이 첫선을 보이던 때 창성당 제품을 입고하는 쾌거를 이룬다. 당시 고급 물건을 다루는 유일한 장소였던 김재현백화점에, 질 좋고 화려한 수입 제품이 즐비한 선망의 공간 안에 창성상점의 물건이 한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인정받았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장원은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백화점 판매의 길을 열었고, 그렇게 창성상점은 품질에 대한 신뢰, 변함없는 성실함을 내세우며 1943년엔 화장품부에 코너를 개설한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남대문시장을 오가던 어린 소년이 열여덟 나이에 이르러 백화점에서 자신의 입지를 찾기까지, 그 켜켜이 쌓인 노력과 집념의 결실은 이토록 찬란한 보람으로 가득한 일이었다. 1932년부터 1945년, 윤독정 여사는 장원을 데리고 부엌에서 고군분투하며 키워낸 일을 아들에게 넘기고 뒤로 물러섰다. 장원이 평생 품어온 미화인생(美化人生)의 근원, 윤독정 여사는 장원의 나이 서른여섯 살이 되던 해 봄날, 꽃무더기 속에서 예순여덞의 생을 마감한다.



Editor’s Epilogue
배움이라는 감사한 일

스스로 터득하고 갈고닦은 기술이 나의 귀중한 노하우가 된다면, 누군가에게서 받은 귀한 가르침은 나를 돌아보고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그 귀한 연은 어디에나 있다. 학교에서 학업을 가르쳐준 스승일 수도 있을 테고, 평생을 함께해 온 가족이나 생활을 나눈 친구, 선·후배가 될 수도, 만화책 속 한 구절이 될 수도 있을 테다.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기회다. 배운다는 경험은 흔치 않은 일이고, 그것을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건 더없이 소중한 일이다. 지금껏 누군가에게서 받아온 지식과 노하우, 삶의 지혜를 톺아보자. 나의 몸과 마음을, 정신과 기틀을 다듬어준 멘토를 떠올리면 마음 어딘가가 벅차오른다. 과업과 삶에 임하는 태도, 그리고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나에게 지혜를 나눠준 귀한 멘토를 떠올리며, 깊은 감사를 마음에 품어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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